15일의 일요일의 일기,17일 화요일의 해설

여행 캔슬당하고/
+15일:중국인 친구가 귀국하기 전 여행을 함께 하자고 졸랐었다. 본래 길치라서 혼자 여행은 커녕, 길찾기- 일정 권한은 몽땅 위임하는 스타일인데 정도 들었고 무척 기대하길래 시험+레포트지만 여행 열심히 알아봤다. 모닝콜을 부탁했는데 감감 무소식, 약간 늦잠 자서 허둥지둥 준비했다.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혹시나 전화 걸어봤는데 지금 일어났단다. 미안합니다-를 연발하면서 새벽 3시에 잤단다. 그럼 빨리 준비하고 나오라고, 서두르면 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안 간단다. 여행을 가지 말자고 하는 건지, 만나지 말자고 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말하라고 했다. 나보고 나오지 말라고. 만나지 마요. 그리고 여행 못간다며 자기 스케줄을 줄줄 읊는다.

그 아이는 17일 시험 끝나고, 18일 친구와 부산여행가고, 19일 기숙사를 나온다. 그리고 귀국. 즉, 앞으로 다시 볼 일 없는 사람. 정이 많이 들었던 아이다. 만나게 된 계기는 한국어 이끄미 프로그램. 일종의 봉사활동이다. 봉사활동 시간도 목적이었지만 타지 생활을 하는 외국인 친구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국내지만 나도 대구갔을 때 많이 외로웠고, 많이 도움 받았으니까 그 처지가 공감가기도 했고. 그래서 후배처럼 정주며 챙겼고 꼬박꼬박 만났다.

처음으로 일정을 짰던 여행이 뽀개진 것도 속상하지만, 그것보다 마지막 태도가 너무 싫다. 적어도 만나서 이야기 해야했던 것 아닌가. 만난다면 화를 냈어도 적어도 마지막 인사는 제대로 했을 것이고 다른 계획을 세우거나 이야기라도 차분히 했겠지. 약속 깨지는 것 정말 싫다. 그렇지만 이해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마무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계속 통화하다간 정말 화내버릴 것 같아서 전화를 끊으라고 했다. 아침 여섯시 반, 허둥지둥 뛰쳐나온  꼴로 버스정류장에 앉은 내 꼴이 너무도 비참했다. 걸어서 15분 거리도 나오기 싫었나. 30분 정도 여유는 있었는데?

+17일:나중 나중에, msn 메신져에 들어가니 쪽지가 있었다. 만나서 이야기 하고 싶다고. 미안하다고. 아쉽지만 늦었다.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할까. 즐겁지도 않을 만남. 화는 풀렸다만, 실망은 가시지 않는다. 만나서 무얼 할지도 애매하다. 그렇지만 이대로 보내기도 애매하다. 기분 좋게 끝낼수 있었던 만남이 이토록 망가지는게 가장 슬프다. 소중한 시간이 아까운 시간으로 전락하고, 주고받은 마음이 탁해진다. 나는 종종 인간관계에 결벽증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분명 좋은 성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전화번호는 남겨뒀다.(전화도, 여행 전날 신신당부하며 일러뒀는데 몰랐나- ) 얻은 것 없는 피곤과 부담이 가득한 만남과 어쨋든 변명과 이해, 덧없고 허무한 추억. 다 싫다.


동생 화상입고/
+15일:짜증이 잔뜩 난 상태로 집에 돌아와 전날 만들어 두었던 카레를 허겁지겁 퍼먹었다. 주린 배를 채운 뒤 침대로 가 바로 뻗어버렸다. 스트레스엔 쥐약인지라. 그렇게 잠든 내 귀엔 언제나의 휴일처럼 막내 동생의 울음소리가 꽂혔다. 한참 불쾌했기에 또 싸웠냐- 눈도 뜨지 않은채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첫째 동생의 당황스런 목소리. 욕실로 달려가보니 반쯤 발가벗은 막내가 샤워기 물을 흘리며 덜덜 떨고 있었다. 새빨게진 몸 곳곳에 피부가 손가락 자국으로 밀려 벗겨져있었다. 국물에 데인 몸을 뜨겁다며 첫째 동생이 컵라면을 먹을 때 막내도 쫄래쫄래  따라가다 엎었다고 한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일단 응급처치를 했다.


화상을 입었을 땐 화기를 빼야하기 때문에 찬 샤워기 물로 계속 식혀주어야 한다.
컵라면 국물에 화상을 입었기 때문에 기름기를 없애야 한다.
샤워젤 거품을 화상입은 곳보다 위쪽에 묻히고 수압이 낮은 샤워기 물로 자연스럽게 흘려보내 씻는다.

 

내 옷 중 박스티를 입히니까 품이 큰 원피스처럼 입힐 수 있었다. 화상부위가 배와 허벅지였기 때문에 헐렁한 옷을 입혀야 했는데 마침 딱 맞았다. 그렇게 손을 잡고 근처 병원으로 횡급히 향했는데 동네 병원에선 안된다고 하여 택시타고 결국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병원 가는 내내 불안해하며 바들바들 떠는 동생을 진정시켰다. 뒤늦게 엄마가 허겁지겁 달려오시고 가벼운 응급조치를 했다. 병원에서는


차가운 식염수를 흘러부어 소독한 뒤 화기를 빼기 위해 거즈에 식염수를 적셔 화상부위에 올린다.

화상용 연고를 두툼하게 바르고 화상부위보다 훨씬 큰 거즈를 붙인다.
(물집은 주사 바늘 같은 것으로 터뜨려준다.)


혹시나 과산화수소나 빨간약으로 소독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엄마께 말씀드리니 애 잡을일 있냐며 웃으셨다.) 2도 화상에 손으로 만져버려서 약간 흉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항생제, 진통제, 해열제. 처음 봤을 땐 완전 겁에 질려서 목소리도 참새같던 녀석이 이제 좀 안심했는지 다시 기운차리고 방방 뛴다. 체육부장이 체육 못해서 어떡하냐.

+17일: 새로 산 박스티는 한동안 동생차지다. 약도 듬뿍듬뿍-_- 잘 먹고 있고, 이제 아프지 않단다. 기특한 건 스스로 음식을 가려먹는다는 것이다. 아프니까 약간 어리광이 늘었지만(자기 발밑에 있는 리모콘을 주워달라거나 뭐...) 그래도 생각보다 훨씬 의젓해서 참 다행이다. 한동안은 컵라면 구경도 못할 것같다. (일년에 몇번 먹지도 않지만) 예전에 언니도 막내때문에 컵라면에 화상을 입은 적이 있다. 컵라면은 기름기 있는 식품이고 뚜껑을 덮어 김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에 훨씬 위험하다. 꼭 조심해야 한다. 응급실 침대에 홀딱 벗고 식염수 목욕하는 건 꼬맹이가 아니라면 곤란할테니...


 
카스테라 굽고/
시험 스트레스로 머리가 빙빙 돌 때, 끝나자마자 하고 싶었던 건 바로 카스테라 굽기! 레시피는 이것.
다른 건 몰라도 요리는 한번 머리 속에서 이미지가 잡히면 반드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사실 오분을 처음 샀을 때 엄마는 카스테라 굽기를 예닐곱번 시도하셨는데 다 실패하셨다. 중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항상 기가 막힌 빵냄새가 났는데 난 정말로 질색이었다. 카스테라가 부풀어 오르는 걸 실패하면 뭐가 되는지 아는가. 옥수수 개떡이다. [마트에서 파는 3000원짜리 그것.]

나는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 바로 핸드 믹서!!!, 이것만 있으면 천년 만년도 갈 것 같은 머랭 뿔을 만들 수 있다.[안녕, 수작 그렇게 베이킹 파우더 없이 처음 빵을 만들었는데 결과는 대성공. 음- 다만 귀찮다고 대충 밀가루를 채쳐 넣었더니 살짝 거친 느낌이다. 레시피 고대로 따라했더니 내 입맛에 너무 달고. 다음번에 시도할 때는 좀 더 덜 단 레시피를 참고 해야겠다. 그리고 잊지 말고 계란물, 유산지를 준비해야지. 만약 잘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선물용으로 굉장히 유용한 스킬이 될 것이다. 

팀 레포트 급수행 中
나만 방학...orzll


15일의 일요일, 더럽게 바빴다.
17일의 화요일, 나름 여유롭다. [안 덧붙여도 그래 보이겠지만. 히힛]

by 츠첸 | 2008/06/15 23:29 | Diary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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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랑쁘 at 2008/06/15 23:38
화상은 심한게 아니길 바랍니다. 참 어린 동생이 있는걸로 들은거 같은데..
Commented by 츠첸 at 2008/06/17 13:43
일요일이라서 응급실까지 갔었네요. 컵라면때문에 다친 거였거든요. 엄청 심각하진 않지만... 컵라면 정말 조심하셔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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